이 스토리는 <한국의 VC :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3인의 창업가> 의 3화입니다

3줄 요약
2015년 제정된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이후 산업 안전 제품 수요가 커지면서 관련 시장이 성장했습니다.
화학 물질을 이용해 위험 물질 누출 여부를 판단하는 영역의 주도권은 이미 중국으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다만 화학 센서 분야는 국내 기업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정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장 3년입니다.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2020년 8월 4일(현지시간) 끔찍한 사고가 터졌죠. 두 차례 대규모 폭발로
188명(8월 31일 기준)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최소 6500명이 다쳤습니다. 재산상 피해액도 150억 달러(약 17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폭발의 원인은 항구에 장기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이 폭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력한 인화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이 자그마치 2750t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3000t)과 맞먹는 규모네요.
안전 문제는 인명·재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특히 유독 화학물질이나 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공장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유독·인화성 물질은 무색·무취인 경우가 많습니다. 질산암모늄도 그렇죠. 이 때문에 이들 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는 만에 하나 사태에 대비해 센서를 설치합니다. 대부분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바닥이나 벽 하단에 배치하죠.
그렇지만 인화성 물질이 이미 유출돼 센서가 작동하면 늦습니다. 공간 하부의 센서가 감지할 정도로 유독 물질이 쌓였다면
누수는 2~3시간 전부터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누수 지점이 어딘지 알 수도 없죠.
현장 감독관이 문제를 재빨리 인지해 대피 명령을 내리더라도 말단 작업자까지 전달되는 데 시간이 소요됩니다.
작업 현장은 고온의 물질이 많고 용접 불꽃이 튀는 경우가 있어 일순간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아이에프코리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스타트업입니다. 유해화학물질 누출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유해 물질과 접촉하면 색이 변하는 접착식 센서를 파이프 이음새 등에 설치해 유해 물질이 유출을 초기에 감지하고 있습니다.
이 센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자식 센서가 아닙니다. 박스 테이프처럼 두툼하게 말린 일견 테이프 뭉치로 보입니다. 이 센서는 물·분진 등 무해 물질에는 반응하지 않다가도 유독성 화학물질에만 반응하는 폴리머 소재 센서입니다. 특허 제품이죠.
변색 센서가 변하면 연동된 알람센서와 누액·가스감지기가 작동해 공장 전체에 문제 발생을 알립니다. 지아이에프코리아는 이런 안전 문제를 조기 감지하고 관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또 공장에서 유독물질 누수가 자주 발생하는 구간·물질 등을 데이터화함으로써 공장의 안전 컨설팅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아이에프코리아는 현재 화학·가스·철강 회사가 많은 울산 등 동남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해외 시장에 판매도 시작합니다. 안현수 대표님과 공장 안전 시장의 현황과 글로벌 동향, 스타트업 생태계 등과 관련해 얘기 나눴습니다.

커진 산업 안전 시장, B2B 기업이 성장하는 법
Q. 안전 장비를 개발하는데, 기술 고도화에 비해 사업화나 수익창출은 어렵지 않나요?
예전에는 안전과 환경 제품 수요가 많지 않아 제품 판매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죠. 그러나 공장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생겼고,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오르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기업 임직원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고요. 특히 2015년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이 제정된 게 컸어요. 공장에서 원인 모를 냄새가 난다고 상급자가 부하직원에서 내려가서 확인해보라고 지시할 수가 없죠. 자연히 안전 제품 수요도 커졌습니다.
Q. 기업들이 실제 안전 장비 발주를 늘리고 있나요?
만약 공장에서 사고가 생기면 회사에 직접적 리스크가 되기 때문에 안전 관리 솔루션 업체들과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발주사들은 기존 대기업을 선호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B2B 시장은 일본의 옴론처럼 업력이 길고 규모가 큰 회사 제품이 아니면 잘 신뢰하지 않아요. B2C처럼 입소문이 퍼져 대박이 나는 상품이 없죠. 지아이에프코리아 제품을 납품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해요. 실무진을 통과해도 상급자가 또 다시 문제제기를 하기 일쑤죠.
Q. 초기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겪는 일 같아요. 이런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 없을까?
제품이 가장 먼저죠. 저희는 그 다음에 대기업 출신 영업통을 영입해 대리점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매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반도체 소재 등을 만드는 원익과 같은 중견기업과도 계약을 체결했어요. 저희 회사 제품이 좋으니, 원익 측에서 저희 제품을 대신 팔아주고 있죠. 저희로선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고 판매를 늘릴 수 있어 흔쾌히 승낙했어요. 바이앤드셀링 방식이라 저희는 제품을 공급하고 제품 판매는 원익이 전담하는 방식입니다. 전국적으로 판매가 크게 늘었습니다. 원익 자체도 화학 회사라 안전 수요가 크고요. 저희 제품이 대기업에도 깔리기 시작하더군요. 물론 매출도 그만큼 더 올랐고요.
Q. 판매망을 넘겨주면 가격 결정 등에 있어 주도권을 뺏기지 않나요? 또 원익이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 시장을 넘겨줄 수도 있고요.
센서 기술을 오픈 해도 제조·관리 노하우를 쫓아오기는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중간 판매사가 별도의 R&D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실제 저희는 삼성전자 공장 내부를 많이 검사했고, 효과도 입증했습니다. 기존 센서는 사고 발생 후에 이를 감지하는 데 비해 저희 기술은 다양한 변수를 통제하며 사고의 원천적 문제부터 접근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또 여러 알람이 100% 진성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데이터와 노하우가 필요하죠.
Q. 차별화 포인트가 잘 와 닿지는 않네요. 기존 안전 업체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죠?
기존 업체들은 공장 곳곳에 센서를 부착해 내부 유독 물질을 감지해요. 그런데 이걸 감지했다는 것은 이미 공장에 유독 물질이 쌓였다는 얘기예요. 이런 방식으론 사후 대처 밖에 못해요. 그에 비해 저희는 파이프 이음새처럼 누출이 발생할 수 있는 포인트에 센서를 부착하고, 이를 중앙에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사고를 조기에 진압할 수 있습니다.
중국, 강한 경쟁 상대이자 엄청난 시장이다

안현수 지아이에프코리아 대표는 “화학 센서 분야는 아직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Q. 지난 몇 년 새 국내에 안전관리 업체가 많이 등장한 것 같아요. 시장 동향은 어떤가요?
초기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수입 제품을 모방하기 바빴죠. 케이블 형태의 센서가 1세대죠. 국내 기업들은 해외 신문물 모방력이 워낙 뛰어나 금방 따라잡았어요. 이에 비해 수입품들은 가격이 비싸서 유통 마진이 적었어요. 그래서 한국산에 자리를 내줬어요. 이런 상황에서 최근 화관법이 시행되면서 센서 개발 회사가 대거 등장했어요. 국내 기업들로선 역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볼 만한 상황이 펼쳐진 거죠.
다만 중국이 문제입니다. 화학 물질 감응 센서는 단기 연구로 쉽게 추격할 수 있는 기술이라 이미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은 중국으로 많이 넘어간 상태입니다. 중국 시장이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현지에 공장을 짓는 게 유리해요. 투자 유치도 쉽고요.
Q. 제품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겠군요.
새로운 재품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실제 노출이 난 부위의 미세 가스에도 빠르게 반응하는 소재 반응형 센서를 내놨습니다. 중국보다 3~4년 앞선 기술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로 확장하면 조선업에도 접목할 수 있습니다. 각 이음새에 센서 달아서 누출 시 알람이 울리게 하는 식으로요. 시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지, 상당히 향상된 수준의 기술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학 센서 분야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Q. 그래핀은 ‘꿈의 나노 소재’로 불리는 신소재인데요, 이걸 어떻게 안전에 활용하죠?
탄소 소재의 3차원 네트워크 구조 형성 기술을 이용합니다. 5세대(5G) 이동통신 모듈이나 전기자동차 배터리처럼 상하좌우 열 전달이 필요한 제품의 방열 이슈를 해결할 방열패드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또 탄소나노융복합소재 기술을 확보해서 생활 악취나 생활 유해가스에서 발생하는 황 화합물·악취 입자를 흡착, 제거하는 제품도 개발했습니다. 생활 영역까지 비즈니스모델을 확장한 거죠.
Q. 새 제품은 해외 시장도 공략할 수 있어 보이는데요?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8년 텐진 폭발 사고로 현지 많은 공장들이 안전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당시 다들 전쟁 난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일차적으로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일단 현지 대형 유통회사를 통해 중국 전 지역과 대만 기업들을 공략하고 있고요, 9월부터 납품에 들어갑니다. 현장 테스트를 통과하면 중국과 대만에서 큰 매출이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은 3년, 투자 받아야 성장한다
Q. 한국에서 기술 기업을 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지 않았나요?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기는 3년 이내라고 생각해요. 이 시기에는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방향을 정해 도움을 주려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이러한 방향성을 잡기가 어려워 최대한 자료에 많은 내용을 적어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열정만 가득한 계획서라고 볼 수 있죠. 한두 번 실패를 격은 후 컨설팅도 받고 정부 지원사업을 하고 계신 지인의 조언을 받아 사업계획서에서 요구하는 포인트를 잘 살려 작성 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사업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Q. 지아이에프코리아는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아 성장했는데,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창업자가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 정부 사업에 지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사업체를 설립해 5000만~1억원가량 정부 지원을 받아 기업을 운영하며 이력을 쌓고, 대기업 채용에 지원하는 식이죠. 한정된 예산을 공평하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잘 하는 업체에 몰아 줄 것이냐 고민스러운 문제죠. 개인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뜻과 의지를 갖고 잘 하려는 업체를 더 키워줘야죠. 스타트업이 성공하면 그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함께 성장해요. 의지가 부족한 창업자의 지원금을 계속 받으면 타성에 젖을 수도 있어요. 그런 회사들은 더 이상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수 없죠.
Q. VC들도 지아이에프코리아 같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다니지 않나요?
투자를 받으러 다니면서 정말 뛰어난 VC 관계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애정을 갖고 사업성 평가를 해준다든가 멘토링을 해줬죠. 그러나 '과연 이런 관점으로 스타트업을 검증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게 투자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스타트업과 VC가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최고죠. 창업자가 사업과 기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면 VC 등 많은 전문가를 만나 배우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지아이에프코리아는 블루포인트와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Q.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2017년 산업은행 공모전에서 본선에 진출했을 때예요. 그 때 황희철 이사님을 처음 뵙게 돼 블루포인트의 컨설팅을 받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조업체고 초기 기업이라 사업설명자료 같은 게 여러모로 투박했거든요. 몰랐고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해 나가면서 산업은행 공모전에서 결국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더불어 투자도 받게 됐고요.
Q. 블루포인트로부터 뭘 배우고 싶었나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하잖아요. 처음에는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앞으로 사업을 어디까지 펼칠지, 투자는 어떻게, 얼마나 받을지 등을 주로 얘기 나눴습니다. 기술과 기업운영 양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새로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